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키포로스 1세 (문단 편집) == 제위 등극 == 서기 800년, [[교황]] [[레오 3세]]가 프랑크 왕국의 [[카롤루스 대제|카롤루스]]에게 왕관을 씌어주며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하면서 당시 로마 그 자체였던 동로마 제국을 엿먹였다. 게다가 자신이 보호자로서 군림하던 교황의 손에 황제라는 지위의 정통성이 휘둘리는 꼴을 볼 수 없었던 카롤루스는 교황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독보적인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'''진짜''' 로마 제국의 여제였던 [[이리니]]에게 접근하였는데, 인망과 지위를 잃어가던 이리니는 이 혼인 제의를 받아들이려 하였다.[* 이리니 딴에는 카롤루스를 적당히 공동 황제로 격상시켜 외세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와 세력을 보조하게 할 속셈이었겠지만, 카롤루스는 공동 황제 그딴 건 잘 모르겠고 살리카 법에 따르면 여성은 왕위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동로마 제위가 공석이나 다름없다고 보았을 것이다. 둘 다 이 어마어마한 혼사의 결과를, 공동 황제 및 여성 군주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각자의 관습대로만 안일하게 내다봤던 것.] 안 그래도 동로마 제국의 사람들은 교황의 행동으로 제국의 긍지와 자존심이 상처 입고 세계관까지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는데, 자신들의 여황제인 이리니까지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'''[[갑툭튀]]한 [[듣보잡]] 괴뢰 황제'''에게 정통성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결국 폭발하였으며, 802년 궁정 [[쿠데타]]를 일으켜 이리니를 폐위시키고 추방하였다.[* 백년 뒤 콘스탄티노스 7세는 의전서에 동로마 황실이 외국인에게 결코 넘겨 주어선 안 될 세 가지를 명시하는데, 첫째가 [[그리스의 불]] 제조법이었고, 둘째가 [[포르피로게니투스|황실에서 나고 자란 공주]]였으며, 셋째가 '''황제의 머리 위에 씌어지는 자줏빛 제관'''이었다.] 그리고 당시 이리니에 의해 재무 대신으로 임명되었던 니키포로스를 새 황제로 추대하였다. 이에 따라 동로마 제국에서 80년 동안 지배하던 이사브리아 왕조가 막을 내리고 니키포로스 왕조가 시작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